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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집 개 ‘보람이’가 언제 ‘진짜 유기견’이 될 지 몰라서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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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작성일24-04-28 02:28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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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를 결심했던 건, ‘한 달 살기’를 했을 때였어요. 제주를 좋아해서 자주 오는데 정작 왜 여기서 살 생각은 못했을까 생각했어요. 배우로서 서울을 떠나는 것이 고민되긴 했지만 제주에 사는 다른 배우분들을 보면서 용기를 냈어요. 제주가 좋은 건 자연과 가깝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원래 캠핑을 좋아해서 자주 했는데 제주에 온 뒤에는 잘 안하게 되더라고요. 도시에서 콘크리트 속에 살다보니 자연을 접하고 싶어서 캠핑을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자연을 접하며 살다보니 캠핑에 대한 욕구가 확실히 줄어들었어요.
보람이는 뒷집에 이사 온 사람이 마당에 묶어놓았던 백구에요. 음식물 쓰레기를 주면서 키우는게 안타까웠지만 제주에 그런 개들은 워낙 많으니 모른 척 하려고 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건 없지만 마음은 안 좋으니 오가면서 들여다봤어요. 주인은 저를 보고 ‘저 사람 강아지를 예뻐하는구나’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개가 밤마다 짖기 시작했어요. 저도 잠을 못자서 너무 괴로웠는데 그 집 주인도 스트레스를 받았나봐요. 자기가 개를 마당에 묶어놓고, 짖는다고 스트레스 받고, 키우기 싫으니까 저에게 ‘강아지 좋아하면 얘 좀 데려가서 키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미 고양이들과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강아지를 원래 좋아했어요. 인스타 팔로워 구매 어릴 때 집에서 키웠거든요. 작은 갈색 ‘시고르자브종’이었어요.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느 겨울, 갑자기 엄마 아빠가 강아지를 더 이상 집에서 키우지 못하겠다고 했어요. 다니던 교회에 마당이 있었는데 그 개를 교회 마당에 데려다 놓았어요. 저는 매일 그곳에 가서 개를 보곤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은 마당에 갔는데 개가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가면 나와서 반겨줘야 하는데 이상해서 들여다 봤더니 강아지가 차갑게 식은 채로 누워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눈물나요. 그 추운 겨울에 집에서 살던 개를 밖에서 키우니 얼어 죽은 거예요. 너무 충격을 받아 한참 울었죠. 시간이 지나고 아빠가 거래처에 누가 잡아먹는다는 강아지가 있다고 했고, 불쌍하니 데려와 시골집 마당에 두겠다고 했어요. 저는 어릴 때 기억 때문에 마당에 두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고 가족들을 설득했어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그 개는 부모님과 집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다행이죠.
겨울이 다가오면서 보람이가 몇 번씩 줄이 풀린 채로 동네를 돌아다니는걸 봤어요. 저는 줄이 풀렸나 생각하고 데려와 묶어놓곤 했어요. 어느 날은 당근마켓에 유기견이 올라왔는데 보람이인 거예요. 누가 유기견 신고를 해서 소방서에서 데리고 있는데 주인이 없으면 유기동물 보호소로 보낸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저희 뒷집 개라고 말하고 데려왔어요. 신원 확인도 없이 그냥 데리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밤, 눈길을 걸어서 보람이를 데리고 뒷집에 데려다줬어요. 살펴보니 개가 줄이 풀린 게 아니라 주인이 일부러 줄을 풀어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답답할까봐 한 번씩 산책 다녀오라고요. 우연히 당근마켓에 올라온 것을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누가 발견하지 못했으면 주인 없다고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했을 게 뻔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보람이 상태가 너무 불안해 보였어요. 언제 신고당해서 보호소에 가서 죽을지 모르는거고, 뒷집 사람이 저한테 ‘강아지 좋아하면 얘 좀 데려다 키워라, 내가 지금 얘를 키우기 싫어 죽겠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얘를 데려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임시보호를 하면서 입양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는데 결국 임종까지 보호를 하게 됐죠. 전 주인이 붙여준 보람이라는 이름에 람보처럼 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보람보’라는 새 이름을 지었어요.
제주에 살다 보면 안쓰러운 개들이 많아요. 저희 집 근처에는 아기 강아지가 사는 집이 있는데 이상하게 강아지가 자주 바뀌어요. 어느 날 그 집주인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아기 강아지가 너무 좋대요. 다 크기 전, 딱 아기 강아지 시절이 귀엽다고요. 그런데 다 자라면 귀찮고 힘드니 다른 사람에게 보낸다는 거에요. 어디로 보내냐고 물었더니 누구한테 말하면 와서 데려간대요. 그렇게 말한 후 아기 강아지를 가리키면서 ‘저거 보라고, 너무 귀엽지 않냐’고 하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작년에는 집 앞에서 다리 다친 개를 발견하기도 했어요.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다리 한 쪽을 절룩거리고 있기에 볼 때마다 돌봐줬는데 알고 보니 윗동네의 어떤 할아버지가 풀어놓고 키우는 개였어요. 할아버지는 낡은 집에 혼자 사시는데 생활도 어렵고 몸도 좋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취해 있으실 때가 많아서 대화가 어려웠지만 대로변 앞에서 개를 풀어 키우면 위험하다고 설득해서 지금은 개를 묶어두고 가끔 산책하는 것처럼 개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세요. 그 개가 괜찮은지 보려고 가끔 들를 때마다 할아버지 말동무를 해드리곤 했어요. 제게 본인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외로우신 것 같아 마음이 쓰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보람이에게 ‘너는 예쁜 여자랑 살아서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불길하다고 해야 하나. 저에게 곤란한 일이 생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의 오해일수도 있겠지만 워낙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그 뒤로는 혼자서는 그 집에 못가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집에는 친구들이 있을 때 같이 들러서 강아지 간식이나 기생충 예방약을 챙겨주곤 해요.
보람보나 동네 다친 개나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을텐데, 저는 어릴 때부터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걸 싫어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어요. 저는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고 아빠는 거실에 앉아있었는데 본인이 냉장고와 더 가까우면서도 제게 ‘꽃비야 아빠 물 좀 줘’ 하시는 거예요. 그때는 아버지 드실 물은 자식이 떠다드리는 게 효도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는데도 순간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망진 어린 아이였던 거죠. 그래서 ‘아빠, 아빠가 더 가까운데 왜 멀리 있는 나한테 시켜?’라고 했더니 아빠가 할 말이 없었는지 물을 직접 떠다 드셨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 불합리한 것들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노키즈 존이나 장애인 차별 문제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퀴어퍼레이드에서 바이크 라이더들과 행진하기도 하고, ‘여배우’ 대신 ‘배우’라는 단어를 쓰자고 하거나, 영화계 현장 내 성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예전에 한진 중공업 해고 노동자들 응원하기 위해 부산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작업복을 입고 갔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으니까 욕하는 사람들이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성 차별에 대한 발언을 했을 때에는 좀 느낌이 달랐어요. 남초 커뮤니티에서 저를 조롱했는데, 당연히 페미니스트들은 저를 응원해주지만 한진중공업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응원해주는 사람보다 욕하는 사람이 더 많고, 욕하는 사람들은 좀 더 혈안이 되어서 조롱하는 느낌에 가까웠어요. 성희롱 메시지도 많이 받았어요.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이 더 많고 저를 응원해줄 것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제게 관심이 없고 제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저에게 응원이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페미니스트를 응원하면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조심스러운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럴때면 물론 위축될 때도 있지만, 그냥 이런게 원래 제 성정 같아요.
최근에는 나이로 위계나 차별이 발생하는게 싫어서 평어(‘이름 호칭+반말’의 형태를 갖춘 상호 존중의 언어) 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해외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한국 사람과 둘만 남아서 이야기를 하면 갑자기 어색해져요. 방금 전까지 영어로 ‘지연, 뭐 먹었어?’ 했는데 일단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연씨? 지연님? 호칭도 모르겠고 우리가 존댓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 반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하고 싶은데, 제가 더 어릴 경우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고 반대로 상대는 저한테 솔직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다거나. 상대는 제게 부탁할 수 있지만 난 상대에게 부탁하지 못한다거나 이런 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나이나 다른 사회적 요소로 상하관계가 생기는 게 싫어서 주변에 평어쓰기를 제안하고 있어요.
평어가 사실 편한 언어는 아니에요. 무조건 상대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서 존중하는 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할 수 있어요. 그래도 계속 쓰는 이유는 평등한게 좋기 때문이에요. 처음 강아지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때는 불편한 게 정말 많았어요. 아무리 바쁘거나 피곤해도 집에 일찍 돌아가 산책해야 하고, 멀리 여행을 다닐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보람보와 나가서 걷다보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곤하고 쉬고 싶을때 집에만 있으면 더 안좋아지더라고요. 걷다보면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고 이제는 서로 더 잘 지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보람보는 제 이상형 강아지거든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애를 낳아서 데리고 다녀야지 개를 왜 그렇게 데리고 다니냐. 개가 일단 검정색이라 기분이 나쁘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겪어본 적 있다는 ‘산책 시비’ 플랫 입주자님도 혹시 경험하신 적 있으신가요? 개를 반려하며 겪게 되는 불편함이나 불합리함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플랫팀이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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